깻잎도 잠을 자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깻잎도 잠을 잔다.
모종을 키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상추의 크기가 자라고, 고추에 꽃 필 무렵 신이 난 나는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베란다 텃밭을 데려가 채소들을 자랑했다.
그러다 축 늘어진 깻잎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마침 깻잎을 키우는 지인과 연락을 주고 받을 때라
'혹시 깻잎이 쳐져 있는 이유 아시나요...' 라 물었다.
'물을 충분히 주셨다면 밤이라서 그럴거에요 ... 자는 중'
답변을 받았지만 답변이 진짜이길(잘못 키운 것이 아니라 수면 중이길) 바랐고, 진짜인지 확인하려면 다음 날 아침이 되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물은 충분히 줬지만 너무 충분히 주진 않았을까? 그래서 과습 문제로 축 쳐져 있진 않을까? 걱정했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깻잎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렷(축 쳐져 있는 모습)한 자세가 아닌 좌우로 나란히를 하며 나를 맞이해주었다.
식물도 잠을 잔다니.
꽃이 낮에 피고, 밤에 지는 건 알고 있었지만 깻잎까지 잠을 잔다니!
식물의 수면을 검색하다 [식물의 수면]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한 과학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이 특이한 논문을 쓴 사람은 바로 식물학자 린네. 린네는 서양벌노랑이를 선물로 받은 후 서양벌 노랑이를 지극 정성으로 키운 끝에 5월 어느 날 노란 꽃을 피웠다고 한다.
린네는 즐거운 마음에 그 꽃을 다시 보기 위해 저녁에 온실로 갔지만 꽃을 발견할 수 없었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꽃이 핀 모습을 본 이후로 린네는 식물의 수면 양태를 연구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식물들이 자는 모습은 바로 발아할 때의 자세와 동일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식물이 밤에 취하는 자세는 처음 세상에 나올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한다. 또 식물 역시 동물처럼 어린 시절에는 많이 자고 나이가 들수록 적게 잔다고 한다.
나보다 더한 식물 집착 쟁이가 여기 있었다니. 반가워요.
그 이후 밤에 힘없는 깻잎의 모습을 보고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도 낮동안 자란다고 고생 많았지? 잘 자'라고 마음속으로 속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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