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베란다 정원이 생긴 뒤로
일을 하다 지치면 베란다에 가서 허리 좀 펴는 것이 나의 루틴이 되었다. 참고로 우리 집에 있는 방 3개 중 방 하나는 나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재택 근무자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집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섭지만 일이 많을 때면 모든 상황 배제하고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일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라 일이 많으면 즐겁지만 간혹 남들 퇴근할 때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일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슬픔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땐 베란다로 나가 허리를 펴고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것만으로도 모자랄 때가 있다. 그럼 식물 배치를 바꾸기 시작한다. 마치 시험을 앞 둔 학생이 공부 전 책상을 공부하는 것처럼 일이 많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란다 대청소 및 식물 배치를 시작하는 것이다.
얼마 전엔 화분 옮기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선반부터 모든 식물 배치를 바꾸었다.
바뀌지 않은 식물이라곤 몬스테라, 제나두 정도일 것이다.
바뀌기 전의 배치도를 보면 이런 모습이였다.
벤치와 인도 고무나무의 위치가 바뀌었고 벤치는 오른쪽으로 조금 밀려났다.
벤치가 밀려나니 깻잎이 갈 곳을 잃어 깻잎은 벤치 아래로 내려갔고,
올리브 나무 옆 선반과 함께 놓여있던 땡초는 통째로 박쥐란이 있던 위치로 옮겨졌다.
화분 개수에 비해 공간에 분포되어 있어 베란다가 좁은 느낌을 받았는데 이렇게 옮기고 나니 한 곳에 식물이 모여 있어 물 주기도 편해졌다.
선반에 식물을 놓기엔 빛이 닿지 않아 가위, 분무기, 물통 등 다양한 집기를 놓았었는데 창가로 선반 위치가 옮겨지면서 빛을 받아야 하고, 높이가 낮은 식물들이 창가 선반 위치로 옮겨졌다.
예를 들어 높이가 낮은 페페 혹은
아래로 쳐지는 립살리스 뽀빠이 같은 식물들 말이다.
화분 스탠드 위엔 여전히 청양 고추가 놓여 있다.
대신 화분 스탠드 아래로 박쥐란을 놓았다.
스탠드 바로 아래에 무언가를 놓기엔 애매한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박쥐란 역시 곱게 자라는 식물은 아니기에 애매하게 놓아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청양 고추 아래엔 박쥐란이 자라고 있다.
게발선인장은 현관 문을 꽤 오래 지키고 있었는데 습한 여름이니 베란다를 좋아할 것만 같았다. 아래로 쳐지며 자라기 때문에 게발 선인장은 선반 2층으로 분양되었다.
선반 1층엔 분무기, 비오킬, 남은 화병 등등 화분 관리에 필요한 도구들을 놓으니 화분을 가꾸기 편리해졌다. 왜 진작에 이렇게 모으지 않았을까? (타이핑과 동시에 이마저도 얼마 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안 좋으면 화분 배치를 바꿔야 하니.)
선반 3층엔 무늬 인도 고무나무부터 청양 고추와 인터메디아. 그리고 수경재배 중인 무늬 벤자민 고무나무와 바로크 벤자민 고무나무들.
한 프레임 안에 여러 식물을 볼 수 있어 너무 좋다.
베란다를 오는 이유도 이 초록색을 보기 위함인 듯하다.
매일 모니터만 보고 있으니 눈이 멀쩡한 날이 없는데 이 초록을 보는 동안은 동공이 열리며 눈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연녹색이던 몬스테라는 점점 진녹색으로 변하고 있다.
식탁에 앉아 있을 때 시선이 닿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식물 배치와 베란다 청소를 하며 체력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수많은 화분들에게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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